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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Don't Look Up) - 블랙코미디 확증편향 관심경제

by melroco 2026. 4. 22.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시청률과 SNS 좋아요 수에 더 집착하는 세상, 이게 영화 속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감각을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은 그런 영화입니다.

 

재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돈 룩 업>의 줄거리 자체는 단순합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지도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그리고 두 사람은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백악관으로 달려갑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지지율 계산을 먼저 하고, 언론은 혜성 충돌 소식보다 연예인 이별 스캔들을 더 크게 다룹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뉴스 앱을 열 때마다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이 영화는 재난 그 자체보다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너무 익숙해서 웃기면서도 서늘합니다.

블랙코미디 장르가 이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란 죽음, 재난, 전쟁 같은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유머와 풍자로 다루는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웃으면서 불편해지는 장르입니다. <돈 룩 업>은 이 형식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합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빅쇼트>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2008년 금융 위기를 다뤘습니다. 복잡한 금융 개념을 유머 코드로 풀어내면서도 본질적인 비판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방식, 그 연장선에 <돈 룩 업>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두 영화를 비교해보니 연출 스타일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빠른 편집, 갑작스러운 자막, 자료 화면 삽입 등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치·과학 소재를 계속 긴장감 있게 끌고 갑니다.

배우들의 연기 대비도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민디 교수는 처음엔 소심하고 불안해하다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점점 체제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반면 제니퍼 로렌스의 케이트는 끝까지 분노하고 저항합니다. 저는 이 두 캐릭터를 보면서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고 단정 짓기 어려웠습니다. 상황에 타협해가는 민디도, 계속 부딪히다 지쳐가는 케이트도, 둘 다 이해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 이해가 오히려 더 씁쓸했습니다.

확증 편향과 관심 경제, 영화가 겨냥한 진짜 과녁

<돈 룩 업>이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두 가지 개념은 확증 편향과 관심 경제입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 "하늘을 봐(Look Up)" 진영과 "보지 마(Don't Look Up)" 진영이 첨예하게 나뉘는 장면이 바로 이 확증 편향의 집단적 버전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눈앞에 혜성이 보이는데도 정치적 정체성에 따라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후 위기나 팬데믹 국면에서 우리가 실제로 목격한 장면들과 겹칩니다.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는 사람들의 주의력(Attention)이 희소 자원이 되는 경제 구조를 의미합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콘텐츠는 진실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주목을 끄느냐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개념입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 허위 정보가 진실보다 평균 6배 빠르게 확산된다고 합니다(출처: MIT Media Lab). 영화 속에서 혜성 충돌이라는 인류 최대의 위기조차 시청률 게임으로 전락하는 장면은 이 통계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두 개념이 맞물릴 때 생기는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같은 정보만 접하게 된다
  • 관심 경제 구조 안에서 자극적인 이야기가 사실적인 정보보다 더 넓게 퍼진다
  •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집단적 판단 능력이 저하되고, 실질적인 위기 대응이 늦어진다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모든 걸 가졌었어"라는 대사가 남긴 것

영화 후반부,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민디 교수가 조용히 내뱉는 대사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모든 걸 가졌었어(We really did have everything, didn't we?)." 이 대사 앞에서 저는 잠깐 화면을 멈췄습니다. 뭔가 찔리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뉴스 앱을 새로고침하면서 정작 옆에 있는 사람한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얼마나 됐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더 큰 자극을 찾아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이미 충분한 것들을 지나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솔직히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각도 있는데, 여기서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유네스코(UNESCO)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21세기 핵심 시민 역량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정규 교육 과정에 통합하도록 각국에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UNESCO).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권고가 왜 필요한지 체감하게 됩니다.

<돈 룩 업>은 단순히 '미디어가 문제다', '정치인이 나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가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보는 내내 웃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 웃음이 어디선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시작하시면 됩니다. 재난 영화가 아니라는 것. 그 전제 하나만 갖고 보시면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훨씬 또렷하게 들릴 것입니다. 보고 난 뒤에는 스마트폰 화면보다 창밖을 한 번 더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 MIT Media Lab, "The spread of true and false news online" — https://www.media.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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