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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 연애 시절, 타이밍, 현실적 사랑

by melroco 2026. 5. 15.

음악 좋고, 색감 좋고, 두 주인공이 춤추는 장면에서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런 영화요. 근데 두 딸 아이 아빠가 되고 나서 다시 봤을 때는, 솔직히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현실적인 영화였나 싶어서요.

와이프와 연애 시절이 자꾸 떠오른 이유

라라랜드를 다시 보는 내내, 저는 자꾸 엉뚱한 데서 멈췄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춤추는 장면. 보다 보면 화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CG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실제로는 로스앤젤레스의 이른바 '매직 아워(Magic Hour)'를 노려 단 다섯 테이크 만에 찍은 장면이라고 합니다. 매직 아워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약 20~30분 정도 지속되는 시간대로, 자연광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피사체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촬영의 황금시간대를 뜻합니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두 배우가 3개월을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와이프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도 장거리 연애였습니다. 지금보다 돈도 없었고, 만날 수 있는 시간도 턱없이 적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만나는 순간마다 그 매직 아워처럼 짧고 강렬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풋풋하고 예뻤던 시절인데, 그 시절에는 그게 예쁜 줄도 몰랐습니다.

 

라라랜드를 로맨스 영화로만 보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좀 다르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건 연출 기법인 미장센(mise-en-scène)이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 용어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요소, 즉 조명, 색채, 의상, 배우의 동선 등을 통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라라랜드에서 미아가 입는 색색의 드레스, 세바스찬의 낡은 뷰익 리비에라, 그리피스 천문대의 황금빛 조명이 모두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이 영화가 보는 내내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저는 두 딸의 아빠가 되어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삽니다. 아이들 재우고 소파에 누워 "내일 첫째 준비물 챙겼어?"라고 묻는 게 요즘 저희 부부의 대화입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평범한 대화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연애 때처럼 재즈바에서 춤출 일은 없어도, 같이 하루를 버티고 맥주 한 캔 나눠 마시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어쩌면 더 크고 현실적인 의미일 수 있겠다 싶어서요.

 

라라랜드가 다른 로맨스 영화와 다른 점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두 주인공 모두 꿈을 이루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잃는다
  • 누구 하나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도 관계가 어긋난다
  •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엔딩이 오히려 더 쓸쓸하게 남는다
  • 사랑의 실패가 아닌 타이밍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타이밍에 대한 영화를 나이 들고 나서 다시 보면

 

라라랜드가 정말 무서운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솔직한 영화라고 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왜 헤어지지?"라는 아쉬움이 컸는데, 다시 보니 "헤어질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이해가 먼저 왔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구조는 내러티브 아이러니(Narrative Irony)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러티브 아이러니란 등장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옳은데, 그 결과가 비극적으로 귀결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미아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세바스찬은 재즈바를 차리고 싶었습니다. 둘 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서로를 위해 실제로 행동했습니다. 세바스찬이 키스의 밴드에 합류한 것도 미아를 위한 선택이었고, 미아가 파리에서 오디션을 본 것도 세바스찬의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근데 그 모든 옳은 선택들이 모여서, 결국 둘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제가 직접 느껴본 건데, 이런 서사가 20대 때는 그냥 슬프게만 읽혔습니다.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 보니까 이게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한 명만 조금 양보하면 안 됐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또 그랬으면 결국 서로 원망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라라랜드는 그 딜레마를 아무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드문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받은 평가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주제가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고,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 3,000만 달러 대비 1억 5,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노미네이트된 7개 부문을 전부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는데(출처: 골든 글로브 공식 사이트), 뮤지컬/코미디 장르 영화가 이 정도 휩쓸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영화 흥행 지표 중 하나인 ROI(투자수익률)로 보면 라라랜드는 거의 15배에 달하는 수익을 냈습니다. ROI란 투입한 비용 대비 얼마의 이익을 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3,000만 달러를 들여 전 세계에서 4억 5,000만 달러 가까이 벌어들인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케이스입니다. 참고로 해외 흥행 1위 국가는 한국으로, 재개봉 포함 약 5,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 유독 강하게 반응한 이유가 뭔지, 저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끝까지 같이 갈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뻔한 해피엔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가끔씩 이런 영화를 보면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됩니다. 연애 때의 화려한 감정은 줄었어도, 같이 육아 버티고 하루 끝에 소파에 나란히 앉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어쩌면 그보다 더 단단한 무언가일 수 있습니다. 라라랜드를 아직 안 보셨다면, 혼자보다는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영화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9D%BC%EB%9D%BC%EB%9E%9C%EB%9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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