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4년 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반도, 개봉 당시 381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꽤 선전한 것 같지만, 저는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묘하게 허탈한 기분이었습니다. 좀비 영화를 기대했는데 카 액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혼란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반도가 좀비 영화처럼 안 느껴지는 이유
저는 디스토피아 좀비물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챙겨 보는 편입니다. 좀비 영화를 볼 때마다 한 번씩은 집 주변을 둘러보면서 "지금 좀비가 나타나면 저 베란다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반도를 보면서는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좀비보다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영화였으니까요.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로 분류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를 말합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이미 대한민국 전체를 삼킨 뒤의 이야기이다 보니, 좀비는 주요 위협이 아니라 그냥 환경처럼 깔려 있는 설정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극 중 좀비의 존재감이 현저히 낮습니다. 카체이싱 장면에서도 좀비는 자동차에 치여 나가는 볼링핀 역할에 그칩니다. 저는 보는 내내 "이거 좀비 영화 맞지?"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이 영화의 실질적인 갈등 구도는 좀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도에서 가장 문제가 된 지점이 바로 이 내러티브(narrative) 구조입니다. 내러티브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흐름을 가리키는 말인데, 반도는 이 부분이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주인공 정석이 트럭을 확보해 탈출하는 미션을 받고, 631부대라는 인간 악당이 가로막고, 현지 생존자 가족과 협력하는 구조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클리셰의 연속입니다.
영화가 지적받은 핵심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작 부산행과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없어 속편으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 신파적 연출이 과잉 삽입되어 긴박한 상황에서 속도감을 떨어뜨립니다
- 좀비의 위협이 희석되고 인간 악역인 631부대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 CGI(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처리의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칩니다. CGI란 디지털 기술로 실제 촬영이 어려운 장면을 컴퓨터로 만들어내는 시각 효과 기술을 말합니다
평론가들의 평점도 대체로 별 셋(5점 만점) 수준에 머물렀고, 메타크리틱 기준 메타스코어는 51점으로 집계되었습니다(출처: 메타크리틱).
그럼에도 볼 만한 이유,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저는 이 영화를 부산행 시즌 2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나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대형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볼 만합니다.
무엇보다 영상미는 상당히 잘 뽑혔습니다. 특히 데이 포 나잇(day for night) 기법을 활용한 밤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데이 포 나잇이란 낮에 촬영한 영상을 후반 작업에서 밤처럼 보정하는 촬영 기법으로, 실제 야간 촬영보다 화면의 시인성이 높아 디테일을 살리기 좋습니다. 파괴된 건물 사이로 조명탄이 터지는 장면이나 황폐해진 도심의 풍경은 꽤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습니다.
카체이싱 시퀀스는 좀비 떼와의 결합이라는 설정만큼은 신선합니다. 좀비 아포칼립스 환경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카 액션은 국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고, 저도 이 부분만큼은 심장이 좀 쫄깃했습니다. 한국판 매드 맥스라는 표현이 나올 만도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아이들 캐릭터였습니다. 보통 재난 영화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지켜야 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도의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직접 운전을 하고, 상황 판단을 하고, 어른보다 침착하게 움직입니다. 보다 보니 "우리 첫째도 저 상황이면 저렇게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현실은 아마 "아빠 무서워!" 하며 매달렸을 것 같습니다.
배우들 중에서는 구교환의 존재감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독립영화에서 쌓아온 개성이 상업 영화 안에서도 살아있어서, 오히려 분량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으로 반도는 누적 관객 수 약 381만 명, 누적 매출액 약 33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개봉 환경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전작 부산행이 기록한 1,156만 관객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반도는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기대치를 얼마나 내려놓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영화입니다. 좀비 공포물로 접근하면 분명히 실망스럽고, 아포칼립스 액션 블록버스터로 접근하면 볼거리는 있습니다. 저도 애드센스 두 번째 거절 메일을 받고 블로그가 아무도 없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지던 날, 괜히 이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됐는데요.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는 그 사투 자체는 충분히 공감이 갔습니다. 아직 반도를 못 보셨다면, 부산행 2를 기대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다 보고 나면 아마 저처럼 "좀비 세상 와도 나는 운전 못 해서 바로 끝이겠는데..." 라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하실 겁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B0%98%EB%8F%84(%EC%98%81%ED%99%94)
https://www.metacritic.com
https://www.kobi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