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저 사람 왜 저렇게 행동하지?' 싶은 상황을 겪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한때 다른 팀 담당자와 업무 충돌이 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멍해질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그 사람이 타 법인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됐지만, 그 경험 덕분에 영화 속 한도경의 선택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2016년 개봉 당시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을 기록했다가 뒤늦게 역주행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 지금 시점에서 다시 들여다볼 만한 이유가 충분한 작품입니다.

개봉 당시엔 왜 외면받았나 — 역주행의 아이러니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 오프닝 신기록인 50만 관객을 첫날에 끌어모았습니다. 예매율이 80%를 넘기며 그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으니, 출발만 놓고 보면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관람객 평점은 6.56에 그쳤고, 개봉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왜 그랬을까를 두고 "지나치게 어둡고 폭력적이어서 대중이 피로감을 느꼈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통쾌한 권선징악을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달콤한 결말을 기대하고 들어간 관객에게는 당연히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관객과 영화 사이의 기대값 불일치가 흥행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반전은 2018년에 찾아왔습니다. 현실 정치권의 비리 스캔들이 터지면서 VOD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치솟았고, 극장에서 메우지 못했던 손익분기점을 VOD 수익만으로 상당 부분 충당하게 됩니다.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이란 총수익이 총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을 말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 순제작비 92억 원에 마케팅 비용을 더한 총제작비 120억 원을 기준으로 360만 명의 관객이 필요했습니다. 극장 흥행만으로는 끝내 그 선을 넘지 못했지만, 2차 시장에서의 뒤늦은 호응이 결국 그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역주행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입니다. 황정민은 "진작 이렇게 흥행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고, 주지훈은 기쁘다면서도 역주행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그 온도 차가 오히려 이 영화의 복잡한 위치를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이 완성한 안남시라는 지옥도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영화 용어로, 카메라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 조명, 세트, 배우의 동선, 색감 — 를 연출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수라>에서 이 미장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핵심 언어로 기능합니다.
가공의 도시 안남시의 풍경은 실제로 부산의 산동네 주택가와 항만을 주로 활용해 촬영했습니다.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낡은 집들과 저 멀리 보이는 항구의 풍경은 화려함과 부패가 공존하는 이중적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대본 리딩을 진행했던 사나이픽처스 사무실 옥상을 직접 안남시의 배경으로 활용했다는 일화도 흥미롭습니다. 김성수 감독이 낙후된 풍경에서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읽어낸 셈입니다.
제가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유리잔을 씹어 뱉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강렬한 연출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인간이 얼마나 막다른 곳에 몰리면 저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 한 장면이 한도경이라는 인물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 영화의 제목 자체도 미장센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초기 제목은 '반성'이었다가 황정민이 시나리오를 읽고 "아수라판이네"라고 한마디 던진 것이 그대로 정식 제목이 됐다고 합니다. 아수라(阿修羅)란 불교 세계관에서 축생계와 인간계 사이에 존재하는 중생으로, 끊임없이 싸움을 일삼는 존재를 뜻합니다. 여러 얼굴을 가지고 서로 물고 뜯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이보다 잘 담아낸 제목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수라>는 2016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 출품되어 동아시아 부문 범죄·정치 장르로 분류되며 해외에서 먼저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출처: TIFF 공식 사이트). 국내보다 해외 평단이 먼저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점도, 당시 국내 관객과 영화 사이의 온도 차를 짐작하게 합니다.
느와르 장르로 읽는 한국 사회의 민낯
느와르(Film Noir)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들이 부패한 사회 구조 속에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장르를 지칭합니다. 쉽게 말해,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이유로 나쁜 짓을 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아수라>는 이 느와르 문법을 매우 충실하게 따릅니다.
한도경(정우성)이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건 아닙니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선택을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마냥 도덕적 잣대로 비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절박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을 맡아 살아온 분들이라면 다 한 번쯤 느껴봤을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사회적 예언력을 가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악덕시장, 비리 검사, 부패 경찰이 서로 얽혀 돌아가는 구조는 특정 사건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이 영화가 예언했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느와르 장르가 갖는 독특한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장르별 관객 성향을 살펴보면, 범죄·스릴러 장르는 꾸준한 팬층을 유지하면서도 개봉 초기보다 재관람 및 2차 매체에서 재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아수라>의 역주행 흐름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합니다.
아수라리언이라 불리는 마니아 팬덤이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도 이 영화의 힘을 보여줍니다. 핵심 요소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권선징악 없이 모두가 파멸하는 날 것의 서사
- 부산 항만과 산동네를 활용한 독보적인 미장센
-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이 만들어낸 긴장감 있는 앙상블 연기
- 시대를 예언한 듯한 한국 사회 구조 비판
"~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라는 표현처럼, 지나치게 어둡고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비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도 처음엔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볼 때는 오히려 그 불편함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것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리뷰한 <세 얼간이>가 "다 잘될 거야"라는 온기로 가득했다면, <아수라>는 그 반대편에 있는 작품입니다. 달콤한 결말도, 통쾌한 복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핏빛 어린 날 것의 액션과 인간의 탐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은 분들, 혹은 한국 느와르의 완성도 높은 사례를 찾고 계신 분들께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버티면 이긴다는 말처럼, 이 영화도 결국 시간이 지나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5%84%EC%88%98%EB%9D%BC(%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