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처질 때, 혹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용기가 필요할 때 저는 이 영화를 틉니다. 위대한 쇼맨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화려한 뮤지컬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제조업 현장에서 11년을 보내며 시스템 속 톱니바퀴처럼 느껴질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노래가 이 영화 안에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8살 딸아이와 함께 다시 봤을 때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아빠로서, 이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거리와 음악 — 무일푼에서 시작된 지상 최대의 쇼
실존 인물 P.T. 바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가난한 양복쟁이의 아들로 태어나 무시당하며 자란 바넘(휴 잭맨)이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을 모아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키가 아주 작거나, 털이 많거나, 몸집이 거대한 이들. 세상으로부터 숨어 지내던 이 사람들은 바넘의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됩니다.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쇼는 점점 커져가고, 바넘은 마침내 지상 최대의 쇼라는 타이틀을 손에 쥡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라랜드 작사팀인 Pasek & Paul이 참여한 OST는 전곡이 킬링 트랙입니다. 그중에서도 주제곡 This Is Me는 편견에 당당히 맞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이게 바로 나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보는 사람 각자가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휴 잭맨의 쇼맨십도 압도적입니다. 레미제라블 이후 다시 뮤지컬 영화로 돌아온 그는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춤과 노래뿐 아니라 눈빛과 표정 하나하나에 바넘이라는 인물이 살아 숨쉽니다. 원색의 화려한 의상과 역동적인 안무, 박진감 넘치는 편집이 더해지면서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지만 19세기 서커스 천막 안에 있는 느낌이 드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입니다.
영화가 말하는 것 — 다름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특별함이다
영화 속 바넘의 대사 중 "남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다"라는 말이 이 작품의 정체성을 관통합니다. 실존 인물 바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립니다. 실제 바넘은 착취적인 면도 있었고 선정주의적인 쇼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다름은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빛나야 할 특별함이라는 것입니다.
상류층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명예를 쫓던 바넘이 결국 깨닫는 것은, 자신의 곁을 지켜준 가족과 단원들이야말로 진정한 최고의 쇼였다는 점입니다. 성공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박수갈채 속에서 찾는 성공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행복. 이것을 영화는 화려한 춤사위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이 메시지가 지금 시대에 더 울림이 큰 이유가 있습니다. SNS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합니다. 더 날씬해야 하고, 더 성공해 보여야 하고, 더 행복해 보여야 합니다. 그 압박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나이가 바로 아이들이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8살 딸아이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너만의 색깔로 살아도 된다고, 영화가 저보다 훨씬 멋지게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직장인 아빠의 감상 — 쇼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A Million Dreams라는 노래의 가사가 있습니다. 백만 개의 꿈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제조업 현장에서 11년을 보내다 보면 꿈이라는 단어가 점점 낯설어지는 시기가 옵니다. 야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재우고 나면 남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 무기력한 순간에 이 노래가 재생되면 이상하게 다시 뭔가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이상으로 느껴지는 건 바넘이 꾸는 꿈의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두 딸과 함께할 미래,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 순간이 저만의 소중한 쇼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퇴근 후 아이들과 밥을 먹고, 주말에 영화 한 편을 함께 보는 것. 그게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쇼입니다.
두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This Is Me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만큼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는 증거라는 걸 가슴으로 아는 사람으로요. 기분이 다운될 때, 새로운 시작이 두려울 때, 혹은 그냥 뜨거운 무언가가 필요할 때 이 영화를 틀어보세요. 영화관이 공연장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