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저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초등학생 딸과 9개월 된 아이를 둔 아빠입니다. 그래서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그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보기 전에는 코믹한 설정의 가족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막상 보고 나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좀비물이라기보다 하나의 감정 실험에 가깝습니다.

기존 좀비물과 다른 이유 — 재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다
좀비딸을 단순한 공포물로 분류하는 분들이 있는데, 보고 나서 그 분류가 꽤 어긋난다고 느꼈습니다. 장르 혼종(genre hybridiz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포, 드라마, 코미디처럼 이질적인 장르가 한 작품 안에서 뒤섞이는 영화 문법을 말하는데, 좀비딸은 바로 이 방식을 택했습니다.
설정 자체부터 기존 좀비물과 다릅니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가 재난 한복판을 배경으로 삼는 반면, 이 작품은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된 이후의 세계를 선택했습니다. 세상은 이미 남아있는 감염 개체들을 소탕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바로 그 틈새에서 아빠 정환이 딸 수아를 숨기기 시작합니다. 이 출발점 하나만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생존이 아니라 은폐가 갈등의 축이 됩니다.
웹툰 원작인 이윤창 작가의 네이버 연재작이 가진 강점 중 하나는 감정의 진폭을 짧은 호흡으로 오가는 것인데, 영화는 이 리듬을 스크린에 꽤 잘 옮겼습니다. 수아의 기괴하면서도 엉뚱한 몸짓은 생각보다 훨씬 원작 분위기에 가깝게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정환이 수아에게 사회성을 가르치려는 에피소드들은 웃기지만 동시에 불편하고, 고양이 애용이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극도로 긴박한 상황에서 맥을 끊는 유머가 살아있습니다. 이 영화가 내러티브 텐션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정환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끝까지 관객에게 판단하게 맡기기 때문입니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대 이후 한국 장르 영화는 단일 장르 의존도를 줄이고 감정 드라마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관객층을 확장해 왔는데, 좀비딸은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수아는 좀비이지만 —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영화를 단순한 가족 드라마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조금 더 불편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수아는 분명히 좀비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수아를 사회적 소수자의 은유로 읽히도록 계속해서 단서를 깔아둡니다. 주류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통제의 대상이 되는 존재. 그게 좀비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주변의 누군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빠로서 이 지점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딸이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 무언가가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디까지 그 아이 편에 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극장을 나선 뒤에도 한참 따라왔습니다. 9개월 된 아이를 안고 이 영화를 떠올리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부산행과 자주 비교되는데, 두 작품의 차이는 꽤 분명합니다. 부산행의 부성애는 위협을 피해 탈출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좀비딸의 부성애는 위협 그 자체가 된 존재를 끝까지 데리고 있으려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 방향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이 전혀 다릅니다. 부산행이 달리는 영화라면 좀비딸은 버티는 영화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가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장르 영화의 흥행 성공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 좀비딸의 설정이 단순히 기발한 발상이 아니라 꽤 치밀하게 기획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아쉬운 점과 그럼에도 보길 권하는 이유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중반까지의 날카로운 설정이 후반으로 갈수록 익숙한 가족 드라마의 문법으로 수렴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갈등을 거쳐 변화하는 심리적 여정을 말하는데, 정환의 아크가 후반부에 다소 평이하게 처리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초반에 쌓아올린 도덕적 불편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훨씬 강렬하게 남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 좀비물과 다른 방식으로 시작해서 결국 익숙한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아쉬움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 대신 조금 슬프고, 군데군데 크게 웃기고, 극장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에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특히 딸을 둔 아빠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웹툰 원작을 먼저 읽고 가도 좋고, 모르고 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준비하고 가시길 권합니다. 내가 저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요. 그 답이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