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선택"한 게 아닙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딸이 선택했고, 저는 그냥 따라간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차 안에서 OST를 같이 흥얼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벌써 수십 번째 관람 즈음이었습니다.

K-Pop과 액션이 만났을 때: 설정과 연출이 터지는 이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5인조 걸그룹이 낮에는 글로벌 K-Pop 스타로, 밤에는 고대부터 이어진 악령 사냥꾼으로 활동한다는 이중생활 구조를 핵심 설정으로 삼습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반칙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K-Pop에 액션, 거기다 판타지까지. 재미없게 만들기가 더 어려운 조합입니다.
이 영화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습니다. 여기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시리즈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제작사로, 기존 3D 셀 쉐이딩 기법과는 다른 독창적인 비주얼 언어를 구사하는 곳입니다. 쉽게 말해 "애니메이션인데 만화책처럼 생겼다"는 그 독특한 질감을 만든 팀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그 감각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칼군무 동작이 전투 시퀀스로 연결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댄스 무브먼트가 타격 모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이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제가 직접 들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대부분의 곡은 영어로 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한글 가사가 튀어나오는 순간 귀가 확 잡힙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이란 영화나 드라마를 위해 별도로 제작된 음악을 말하는데, 이 작품의 OST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극의 감정선을 직접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저희 딸이 차 안에서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국 문화 요소가 세계 메인스트림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 따르면 K-Pop을 포함한 한국 문화콘텐츠의 글로벌 수출 규모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미주와 유럽 지역에서의 소비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이렇게 세계 무대에 서는 걸 볼 때마다 현장에서 느끼는 국가 위상 변화와는 또 다른 종류의 뿌듯함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댄스 동작 기반의 전투 액션 시퀀스: 칼군무가 실제 전투 모션으로 연결되는 설계
- 한국적 미장센(mise-en-scène): 서울 야경, 전통 문양, 현대 패션의 혼합
-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한글과 영어가 교차하는 중독성 있는 구성
- 여성 주인공 중심의 히어로 서사: 기존 남성 위주 액션물과의 차별화
더 어둡게 갔어야 했던 이유: 아쉬운 지점과 남겨진 질문
그런데 여러 번 보다 보니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문제작이 될 수 있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순간마다 영화는 다시 '가볍게' 돌아옵니다.
영화 속 악령과의 싸움은 단순한 판타지 설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를 메타포(metaphor), 즉 현실 세계의 어떤 것을 빗대어 표현하는 상징적 장치로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K-Pop 아이돌이 마주하는 대중의 시선, 끝없는 완벽함에 대한 압박, 멤버 간의 갈등과 연대. 이것들이 악령의 모습으로 구현되었을 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충분히 파고들어지지 않은 느낌입니다. 깊어질 것 같은 순간에 빠르게 유머나 액션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버립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도 감정적으로 더 무거운 지점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건, 픽사(Pixar)가 수십 년간 증명해온 사실입니다. 픽사란 업(Up),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등의 작품으로 전 세계 관객의 눈물을 뽑아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어린이 영화는 가볍게"라는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곳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조금 더 그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확실히 남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 무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이상이 됩니다. 두 딸의 아빠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히어로 상(像)을 보여준다는 점도 크게 와닿습니다. 근육질 남성 히어로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열정으로 세상을 지키는 여성 캐릭터들.
넷플릭스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이후 다수의 국가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상위권에 진입하며 글로벌 관객의 관심을 받았습니다(출처: Netflix Tudum). 수치가 증명하듯, 이 작품이 가진 대중적인 흡인력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흡인력이 조금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 쓰였다면 어땠을지, 그 아쉬움이 오히려 이 영화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화려한 케이팝 애니메이션'으로는 합격점을 받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저처럼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처음 보신다면 부담 없이 즐기시고, 두 번째 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악령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서 보시길 권합니다. 그 질문 하나가 이 영화를 꽤 다르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참고: - melroco.com, 케이팝 데몬 헌터스 기대 포인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