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룬 영화가 왜 보고 나면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질까요. 처음 코코를 봤을 때 저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와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죽음이 아니라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음악이 금지된 집안, 그 설정이 품은 맥락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아닙니다. 픽사란 기술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성인과 아이 모두에게 유효한 감정적 경험을 설계하는 스튜디오로, 코코는 그 역량이 가장 집약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 전통 축제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는 단순한 소재 선택이 아닙니다.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란 매년 11월 1일에서 2일 사이에 열리는 멕시코 고유의 풍습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이 잠시 살아있는 자들의 곁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날입니다. 서양의 할로윈처럼 공포를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가족의 죽음을 슬픔이 아닌 축제로 받아들이는 문화입니다. 픽사는 이 설정을 서구의 시선으로 왜곡하지 않고 상당히 정중하게 재해석했습니다.
주인공 미구엘의 가족이 대대로 음악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의 꿈을 쫓아 가족을 떠났다는 상처가 수십 년째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꽤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한 세대의 선택이 다음 세대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 묵직한 무게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안에 그대로 담아냈으니까요.
코코가 2017년 개봉 이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이 완성도를 공식적으로 증명한 결과입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기억이 사라질 때 사람은 진짜로 죽는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이렇습니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영혼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순간, 영혼은 '파이널 데스(Final Death)'를 맞이하며 영원히 사라집니다. 파이널 데스란 육체적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두 번째 소멸로,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만화 원피스에서 닥터 히루루크가 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는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심장이 총알로 꿰뚫렸을 때? 아니다. 사람에게 잊혀졌을 때다." 코코는 그 철학을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낸 셈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화려한 사후 세계 비주얼이 아니었습니다. 마마 코코의 주름진 손이었습니다. 기억이 흐려지고 있는 그 노인이 결국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이유가 슬퍼서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코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오프레다(Ofrenda)입니다. 오프레다란 사망한 가족의 사진과 좋아하던 음식, 소지품 등을 제단에 올려 기억을 공유하는 멕시코 전통 제단 의식입니다. 영화는 이 제단에 사진이 없으면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될 수 없다는 설정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장치가 됩니다.
코코가 말하는 기억의 역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기억은 죽은 자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음악은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기억을 소환하는 도구다
- 가족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행위가 일종의 생명 연장이다
OST 'Remember Me'가 극의 흐름에 따라 화려한 공연곡에서 애절한 자장가로 변주되는 구성도 바로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음악이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라는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딸아이와 코코를 볼 때 드는 생각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틀어줬습니다. 아이는 강아지 단테의 재롱에 웃고, 화려한 알레브리헤(Alebrije) 비주얼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알레브리헤란 멕시코 민속 공예에서 유래한 색채화된 동물 형상으로, 영화에서는 사후 세계의 안내 동물로 묘사됩니다. 아이에게는 그냥 예쁜 동물이었겠지만, 저에게는 다른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마 코코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이르자, 저는 영화보다 딸아이 얼굴을 더 많이 봤습니다. 이 아이가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직은 모르겠지 싶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이가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아빠 할머니 보고 싶어?" 제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넘어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두 층위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표면에는 모험과 음악이 있고, 그 아래에는 기억과 상실이 있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같은 화면을 보면서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감동받는 구조입니다.
유네스코(UNESCO)는 멕시코의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를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출처: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코코가 그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물 이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코코는 크게 울리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울림이 상실의 아픔이 아니라 연결의 따뜻함에서 옵니다. 딸아이와 함께 볼 계획이 있다면, 엔딩 이후에 5분만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 네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분들이 있어"라고 꺼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도 그날 이후로 아이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조금씩 더 자주 꺼내게 됐습니다.
참고: -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결과 (https://www.oscars.org)
-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멕시코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 등재 정보 (https://ich.unesco.org)